HK평화의書
평화인문학 지평의 심화/확대를 위해 HK연구인력과 학문후속세대가 함께 모여 평화학 관련 주요저작을 읽고 토론하는 고전독해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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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토의 내용:

 

∘ 식민주의 하에서 피식민인의 치유는 개인적인 수준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됨. 피식민인의 정신병리적 문제를 포함한 각종 폐해들을 (재)생산하는 식민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타파하고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이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움. 즉, 피식민인 개인의 치유는 사회 치유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사태를 지나치게 사회 수준의 문제로만 파악하는 것을 동시에 경계할 필요가 있음. 사회 치유의 수준에서 탈식민화 운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와 동시에 피식민인이 보여주는 콤플렉스 등 이들의 다양한 행태와 의식구조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분석이 복합적인 방식으로 병행되어야 함.

 

∘ 민족의식에 대한 파농의 태도는 양가적임. 그에 따르면 탈식민화를 위한 운동은 일대일 수준의 대항폭력을 넘어서 식민질서 자체를 타파하고 새로운 문화와 질서를 창출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심지어는 서구 문명을 개선하려는 시도로도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응집된 총체적 수준의 폭력을 요구함.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의식은 부족, 씨족 단위의 ‘나뉨’과 ‘구분’의 식민 관리의 동학을 뛰어 넘고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폭력적 운동에 농민을 포함하여 다양한 계층을 동원할 수 있는 동력임.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나타난 민족 정당 및 이른바 민족 부르주아지들의 한계(예컨대 농민세력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고, 독립 후에는 독재와 결탁하는 모습)는 논외로 하더라도, 과연 민족의식이라든지 민족주의가 저항운동의 동인 혹은 촉매제의 의미를 넘어서 탈식민화된 시공간에 새로운 문화, 질서를 수립하는데 있어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의 대상임(파농은 실제로 탈식민화된 아프리카의 질서는 분권화의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함). 파농은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 자신을 민족주의 엘리트로 보지도 않았음.

 

∘ 민족주의의 딜레마는 알제리 여성의 베일 문제에서도 찾을 수 있음. 파농은 식민 지배자가 피식민 여성에 대한 문화적 강제를 통해 식민지의 기존 사회 구조를 파괴한다고 봄.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여성의 베일의 문제를 정치화하여 이해함. 즉, 식민주의는 ‘알제리의 베일을 벗기는’ 기획으로 재구성되고, 결국 알제리 여성은 그러한 기획을 거부함으로써 탈식민 혁명의 동지가 된다는 식의 논의가 전개됨.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파농의 이같은 여성상에 대한 재현이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됨.

 

∘ 식민 질서 하의 억압적 폭력에 저항하고 이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해방을 위한 총체적 폭력으로서의 탈식민화 운동이 필요했음. 그러나 폭력적 방식으로 달성된 탈식민화가 혹시라도 폭력의 경험을 통한 승리의 경험으로 인해 ‘정의는 강자의 편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적 관념을 학습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않는지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음. 이 부분에 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봄.

 

∘ 파농은 라깡의 초기이론인 거울단계이론을 식민지 상황에서 원주민-이주민 (자아-타자)의 관계성의 맥락을 고려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임. 주체는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혹은 타자의 시선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식민지에서 원주민과 이주민 관계 속에서 주체의 구성 과정이 왜곡된 형태로 됨.

 

∘ 파농은 ‘반식민’의 논의를 자율성 혹은 창조성의 논의와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음. 즉, 반식민이 결코 전식민주의의 과거로의 향수병적 회귀가 되어서는 안 되며, 반식민의 투쟁 자체가 참여자들의 자율적 참여 속에서 새로운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함. 이처럼 저항운동이 곧 새로운 문화질서 창조운동이라는 발상은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작지 않은 함의를 주며 실제로 그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음. 예컨대 수요집회는 단지 일본군 강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에 대한 일본의 진상 규명 및 일본 정부의 진실된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평화문화운동으로 진화해 왔다고도 볼 수 있음. 이처럼 파농의 논의는 우리가 사회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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